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국가폭력과 집단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가장 강렬하게 다룬 작품 중 하나입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국가의 폭력과 그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흔적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한국 사회의 깊은 그림자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드러나는 국가폭력의 본질, 트라우마가 남긴 사회적·개인적 상처, 그리고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국가폭력, 한 사회의 어두운 얼굴
국가폭력이란 국가 권력이 정당성을 상실하거나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때 발생하는 폭력을 의미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이러한 국가폭력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광주 시민들이 무차별하게 진압되고, 군인들이 시민들을 폭행·살해하며, 시체마저 은폐되고 왜곡되는 모습은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의 극단적 사례입니다.
한강은 소설 속 주인공 동호를 통해 그 폭력의 한복판에 놓인 한 아이의 시선으로 그 참혹함을 묘사합니다. 동호는 죽은 친구 정대룡을 지키려다 결국 학살의 희생자가 됩니다. 이 장면은 국가폭력이 가장 잔인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며, 권력과 무고한 개인 사이의 극명한 힘의 불균형을 보여줍니다.
국가폭력은 물리적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폭력을 지켜본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거짓 진술을 강요받은 사람들, 살아남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정신적·심리적 폭력으로 남게 됩니다.
트라우마가 된 역사, 기억과 고통의 서사
트라우마(Trauma)란 극심한 공포, 충격, 고통을 겪은 개인이나 집단이 오랫동안 그 기억 속에 갇히는 심리적 상처를 의미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바로 이 집단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문학적으로 그려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단순히 광주의 사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 때문에 삶 자체가 멈추거나 왜곡됩니다. 동호의 죽음을 목격한 은숙, 고문을 당했던 정대, 살해 현장을 목격한 남매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트라우마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침투해 있다는 점입니다. 진실이 은폐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침묵을 강요당하며, 기억하기보다 잊기를 강요받는 사회적 분위기는 트라우마를 더욱 공고히 만듭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질문합니다.
- 왜 우리는 아픈 역사를 말하지 못하는가?
- 고통의 기억은 잊어야 할 것인가, 기억해야 할 것인가?
- 국가폭력 이후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는 고통스러운 기억조차 기억해야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트라우마는 치료와 극복의 대상이기 이전에, 먼저 ‘존재를 인정’받아야 할 사건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와 국가폭력의 반복성
『소년이 온다』의 문제의식은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광주 이후에도 여러 형태의 국가폭력과 사회적 트라우마를 반복해왔습니다.
- 용산참사(2009)
- 세월호 참사(2014)
- 촛불집회와 경찰 진압
- 노동자 인권 침해 사례
- 정보 왜곡과 언론 탄압
이런 사건들은 과거 광주의 트라우마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국가폭력은 더 이상 총칼과 물리적 억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실 은폐, 언론 조작, 책임 회피, 피해자 침묵 강요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기억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기 위한 힘입니다.
결론: 기억해야 인간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국가폭력과 트라우마라는 한국 사회의 깊은 그림자를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기억'이라는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가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진실을 말하는 일, 아픈 기억을 꺼내는 일,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이다.”
광주의 그날을 넘어, 오늘의 한국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입니다.